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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

쇼핑tip

《‘청담동 멋쟁이’로 소문난 패션잡지사 에디터 A 씨.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스타일이라 주변의 시샘을 한몸에 받는다. ‘프라다를 입는 악마’가 따로 없다. 그러나 사실 A 씨의 보물창고는 따로 있다. 이태원이다. 이곳엔 최신 유행을 반영한 옷들이 매일 들어온다.

가격은 견딜 만하다. 겨울 코트도 10만 원 안팎으로 건질 수 있다. 이태원은 패션업계나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멋쟁이들 사이에선 이름난 쇼핑 명소다. 그래서 ‘쇼핑 앤 더 시티’의 저자인 배정현(34·여) 쇼핑 칼럼니스트와 함께 이태원 탐방에 나섰다. “패션잡지사엔 선배들로부터 내려오는 ‘쇼핑족보’가 있어요. 그 중에서도 이태원은 예뻐하는 후배에게만 살짝 알려 주는 비밀세계 같은 곳이죠.” 그는 이번 쇼핑에서 ‘모스키모’ 스타일 코트(8만 원), 빨강색 반짝이 구두(9800원) 등을 건졌다. 》

○ 이태원 옷의 정체

패션업체의 거래 공장에서 만든 제품 중에선 품질 규격 미달 등의 이유로 정식 유통되지 못하는 옷(일명 보세)이 많이 나온다. 이런 옷은 상표가 뜯겨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과 비슷하게 디자인된 것들도 있다. 진품과 카피가 섞여 있는 셈이다.

배정현 씨는 “1990년대 후반까지는 진품 재고량이 넉넉했지만 최근엔 업체들이 공장 관리를 철저히 해 크게 줄었다”면서 “80%는 비슷한 스타일 옷, 20%는 보세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인기 제품은 ‘끌로에’ ‘마크제이콥스’ ‘다이안 폰 퍼스텐버그’ ‘BCBG 막스 아즈리아’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좋아하는 최신 디자이너 브랜드 스타일. 백화점 가격의 10분의 1에 살 수 있는 게 이태원 쇼핑의 매력이다. 이런 점 때문에 젊은 층뿐 아니라 40, 50대 여성들도 삼삼오오 짝지어 이태원을 찾는다.

이태원 ‘실비아’ 최형대(38) 사장은 “패션업계 종사자나 연예인 스타일리스트 등이 단골 손님”이라며 “단골 장사라 품질과 디자인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 취향에 맞춰 쇼핑 산책

넓고 넓은 이태원. 수없이 많은 쇼핑몰과 “가방 찾아요?”라고 외치는 점원들. 멋쟁이들이 자주 찾는 ‘그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이태원 시장=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근처 맥도날드 부근에 있다. 보도에 있는 ‘이태원 시장’이라는 푯말을 찾아야 한다.

이태원 시장 1층은 주로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입는 풍의 옷들을 판다. 주머니가 가벼운 신입사원들에게 알맞은 정장을 15만 원대에 살 수 있다. ‘언더그라운드 마켓’으로 불리는 지하 1층은 ‘DKNY’ 스타일 티셔츠, 막 입는 민소매 티셔츠, 가죽 재킷 등을 파는 캐주얼 의류점이 즐비하다.

이태원 시장 1층 ‘백만불’의 이종산(46) 사장은 “새로운 디자인이 매일 20∼30벌씩 한정수량으로 들어와 인기 아이템은 눈 깜짝할 새에 팔린다”고 전했다. 실제로 기자가 점찍어둔 ‘캘빈클라인’풍 미니원피스(6만 원대)를 사러 이튿날 가보니 이미 팔리고 없었다.

▽빅토리 타운=스타들이나 입을 것 같은 드레스를 갖고 싶다면 이곳으로 가면 된다. 긴 것에서 짧은 것까지 다양한 드레스가 5만∼30만 원대로 갖춰져 있다.

점원 이은정(32) 씨는 “연말연초 파티, 동호회 모임, 돌잔치, 연주회 의상용으로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리본 달린 검정색 롱 드레스가 7만 원대, BCBG 막스아즈리아풍 미니드레스가 5만∼15만 원대.

▽DMZ=밀리터리 마니아들에겐 꿈같은 곳. 이태원 시장 옆 골목에 있다. 베트남전 당시의 미군 군복, 2차 대전 때의 프랑스군 철모 등 역사적인 물건에서 최신 제품까지 없는 게 없다. 낡은 듯한 빈티지 가죽재킷이 40만 원대이고 1943년도 미군 군복은 20만 원대다. 윤현진(50) 사장은 “20대에서 80대까지 연령 불문하고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자주 온다”고 말했다.

▽안전지대-스타마켓=남녀 캐주얼 의류, 구두, 가방, 액세서리 등을 판다. 최신 유행의 구두가 9800원, 가방은 1만∼4만 원대. 구두는 발이 편해야 좋다는데 불편하진 않을까. 배 씨는 “어차피 하이힐은 명품을 신어도 불편하다”며 “특별한 날 포인트용으로 신으면 된다”고 말했다.

○ 금강산도 식후경

“이태원 밤거리를 여자 혼자 걷기 겁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친구들끼리 주말 오전에 만나 ‘브런치(아침 겸 점심)’부터 시작하는 게 좋아요. 가족이 함께 둘러봐도 괜찮고요.”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근처 해밀턴 쇼핑센터 옆 골목으로 올라가면 이태원의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이국적인 고급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청담동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데다 일본, 인도, 프랑스, 스페인 등 다양한 풍미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배 씨는 이태원역에 내려 이국적인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은 후 녹사평역 쪽에 있는 이태원 시장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권했다.

▽라 플란차=스페인 레스토랑. 이태원의 유명한 프랑스 레스토랑 ‘르 쌩 텍스’의 프랑스인 요리사가 남부 프랑스식 스페인 메뉴를 개발했다고 한다.

브런치는 계절생선요리, 파에야(스페인식 볶음요리) 등을 1만∼2만 원에 골라 먹을 수 있다. 저녁메뉴는 ‘타파스’(1만5000원 선) ‘콤보메뉴’(1, 2인용·2만8000원) 등이 인기. 스테이크, 해산물꼬치 등 테이크아웃 메뉴가 따로 준비돼 있다.

▽어보브=유럽식 레스토랑. 브런치는 1만∼2만 원 선으로 오믈렛, 샌드위치, 케이크 등이 마련돼 있다.

허브와 레드와인을 넣은 닭찜인 ‘뽈로’(2만2000원)를 비롯해 ‘홍합찜’(1만8000원) ‘해산물 리조또’(2만3000원) 등이 인기 메뉴. 와인은 2만 원대에서 20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배정현 쇼핑 칼럼니스트가 귀띔한 이태원 쇼핑 노하우

1. 이럴 때 이태원―동대문과 인터넷 쇼핑몰에서 찾기 어려운 독특한 최신 스타일, 여성 정장, 파티 드레스, 큰 사이즈 옷 등이 필요할 땐 이태원으로 가라.

2. 단골을 만들자―단골 점포 상인과 친해져야 숨겨놓은 귀한 디자인 옷을 만날 수 있다. 언제 인기 디자인이 들어오는지도 알려 준다.

3. 일단 깎아보자―현금을 준비해 가면 물건 값을 깎기가 쉬워진다. 서로 감정 상하지 않는 선에서 애교로 깎는다.

4. 사전지식을 쌓자―눈썰미가 있어야 보물을 찾는다. 해외패션계 흐름 등을 충분히 감지해 나만의 보물을 찾자. 환불과 교환이 어렵기 때문에 잘 알고 가야 후회 없는 선택을 한다. 또 2, 3일 후에 가면 제품이 없어지기 때문에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 사두는 게 좋다.

5. 대중교통을 이용하자―이태원은 주차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 내려 해밀턴호텔 뒤편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뒤 녹사평역까지 내려와 쇼핑하고 집에 가면 편하다.

글=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